2012년 10월 24일 수요일

신기루를 잡으려는 사람들 [하나님의교회=어머니하나님*안상홍(안증회)하나님/새언약유월절//김주철총회장]

 

하나님의 교회는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계신 교회입니다사랑의 대명사인 어머니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온전한 가르침과 사랑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신기루를 잡으려는 사람들
 
 
1798년 제2의 알렉산더를 꿈꾸며 무서운 기세로 주변국들을 정복해 가던 나폴레옹은 3만 5천여 명의 프랑스 군사들과 함께 이집트 원정길에 나섰다. 승승장구하던 나폴레옹과 그의 군사들은 이집트의 온갖 진귀한 보석과 넓은 땅을 차지할 기쁨에 한껏 들떠 있었다. 그러나 막상 이집트에 도착한 나폴레옹의 군대는 예상치 못한 복병을 만나게 됐다. 뜨거운 뙤약볕이 내리쬐고 끝도 보이지 않는 모래 벌판, 바로 사막이었다.
 

이집트 곳곳의 사막을 걷다 지친 군사들은 목이 타들어가는 갈증에 몹시 괴로웠다. 군사들은 물 한 모금만 마실 수 있다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바로 그때였다. 나폴레옹과 군사들의 눈앞에 놀라운 광경이 펼쳐졌다. 갑자기 야자수가 보이고 시원한 물이 샘솟듯 흘러 넘치는 오아시스가 나타난 것이다. 물을 마실 수 있다는 기쁨에 군사들은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오아시스를 향해 필사적으로 뛰어갔다. 그런데 이게 웬일인가. 오아시스에 가까이 가면 갈수록 오아시스는 더 멀어져만 갔고 아무리 애써도 잡을 수가 없었다. 군사들이 잡으려 했던 오아시스는 신기루였던 것이다.
 

'내 사전에 불가능은 없다'라고 자신만만 해왔던 나폴레옹이라 해도 오아시스가 없는 사막에서는 군사들을 위해 물 한 모금 주는 일조차 불가능했던 것이다. 영적 세계 이와 같다.
 

(사 41:17) 가련하고 빈핍한 자가 물을 구하되 물이 없어서 갈증으로 그들의 혀가 마를 때에 나 여호와가 그들에게 응답하겠고 나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그들을 버리지 아니할 것이라
 

(암 8:11) 주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보라 날이 이를지라 내가 기근을 땅에 보내리니 양식이 없어 주림이 아니며 물이 없어 갈함이 아니요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성경은 우리의 영혼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해 심각한 기갈에 허덕이고 있다고 말했다. 아름다워 보이는 이 지구가 사실은 영적인 물 한 방울 찾을 수 없는 거대한 사막이라는 말이다. 오랫동안 수많은 사람들이 영혼의 생명수 곧 하나님의 말씀을 찾아 헤맸지만 그 누구도 찾지 못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생명수의 근원으로 인도해주시기 위해 직접 이 땅 다시금 오셨다(히 9:28).
 
(사 49:10)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 더위와 볕이 그들을 상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을 긍휼히 여기는 자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임이니라
 

하나님께서 인도해주신 샘물의 근원 어디일까. 성경은 샘물의 근원이 예루살렘이라고 알려준다.
 

(슥 14:8) 그날에 생수예루살렘에서 솟아나서 절반은 동해로, 절반은 서해로 흐를 것이라 여름에도 겨울에도 그러하리라
 

(겔 47:1~9) 그가 나를 데리고 전 문(예루살렘)에 이르시니 전의 전면이 동을 향하였는데 그 문지방 밑에서 물이 나와서 동으로 흐르다가 전 우편 제단 남편으로 흘러 내리더라 …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 들어 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모든 것이 살 것이며
 

사시사철 생명수하나님의 말씀이 흘러나오는 예루살렘, 과연 어디일까.
 

(갈 4:26) 오직 위(하늘)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사도 바울은 생명수근원‘하늘 어머니’라고 증거했다. 그래서 미가 선지자는 마지막 때 “여호와의 말씀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나올 것(미 4:1~2)”이라고 예언한 것이다. 하늘 어머니로부터 흘러나오는 생명수하나님의 말씀, 이 말씀을 통해 우리는 영혼의 소성함을 얻을 수 있다.
 

그 누가 하늘 어머니께서 계시지 않는 곳에서 생명수인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으며 영혼의 구원을 얻을 수 있단 말인가. 성경엔 예루살렘 하늘 어머니께서 계시지 않는 곳에서도 영혼의 소성함이 있다는 말씀은 없다.
 

하늘 어머니께서 계시지 않는 곳에서 영혼의 구원 바라는 것은, 신기루를 따르는 것과 같다. 허무맹랑한 말로 만들어낸 신기루에 속지 말자. 성경 예언에 따라 오신 하늘 어머니께서 생명수 주시고 있지 않은가.
 

(계 22:17) 성령(아버지 하나님)과 신부(어머니 하나님)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하나님의교회라는 명칭은 인위적으로 지어진 이름이 아니라 성경에 명시된 초대교회의 이름이 “하나님의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안상홍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교회는 초대교회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는 진리교회입니다. 안상홍님께서는 진리가 없는 시대에 새언약 복음을 회복해 주신 재림그리스도이십니다.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하나님의교회=어머니하나님*안상홍하나님/새언약유월절//김주철총회장]

 
 
 

하나님의 교회는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계신 교회입니다사랑의 대명사인 어머니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온전한 가르침과 사랑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
 
 

세계적으로 유명한 작가 대문호 톨스토이의 단편 중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라는 제목의 소설이 있다.
 

사건의 발단은 화려한 도시생활을 하는 언니와 시골에서 농촌생활을 하는 동생의 대화에서 시작된다. 서로의 생활을 비판하는 두 자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동생의 남편 파홈이 "우리 농부들은 땅만 넉넉하다면 악마나 다른 그 누구도 무서워할 것이 없다"며 편안하고 자유로운 농촌생활이 좋다는 아내의 말을 거들었다. 땅만 넉넉히 있으면 악마 따위는 두려워할 것이 없다고 큰소리치는 파홈의 말을 듣고, 악마는 화가 치밀어 올랐다. 그래서 파홈에게 땅을 넉넉히 주고 그 땅으로 미혹하리라 결심했다.
 

어느 날 한 사람이 소유한 대지를 팔기 위해 내놓자 파홈은 그 동안 저축한 돈과 친척들에게 빌린 돈으로 계약금을 치렀다. 농사가 잘되어 1년 만에 빌린 돈을 다 갚게 됐다. 드디어 소원하던 땅 주인이 된 것이다. 처음에는 행복했다. 그러나 다른 농부들의 가축이 땅을 침범해 농작물에 피해를 주는 등 잡음이 생기자 파홈은 땅이 좁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해마다 풍년이 되는 비옥하고 넓은 땅을 분양 받을 수 있다는 소식을 듣고 모든 재산을 팔아 고향을 떠나 이주했다. 그가 가진 땅은 이전의 세 배가 됐고 살림은 그전보다 열 배나 나아졌다. 차차 생활이 안정되고 살림이 불어나자 이곳 역시 좁게 느껴졌다. 그리고 분양 받아 농사를 짓기 보다 영원한 자기 땅을 소유하고 싶어졌다.
 

그러던 중 적은 돈으로 일년이 걸려도 다 돌아볼 수 없을 정도로 큰 땅을 살 수 있다는 소식을 듣게 됐다. 그곳은 바스키르 원주민들이 사는 땅이었다. 듣던 데로 저렴한 비용으로 넓은 땅을 살 수 있는 곳이었다. 땅을 얻는 방법도 간단했다. 시작점에서 출발하여 원하는 땅을 괭이로 표기하고 해가 지기 전에 시작점으로 돌아오면 표기한 모든 땅을 소유할 수 있게 된다.
 

파홈은 시작점에서 출발해 마음에 드는 땅을 표기하며 걸어갔다. 출발점으로 돌아가려고 할 때마다 놓치기 아쉬운 땅들이 있어 포기할 수 없었다. 정신을 차려보니 이미 해가 지고 있었다. 그는 힘껏 달렸다. 숨이 가파라 땅을 포기할까 하는 생각도 했다. 그러나 언덕만 넘으면 된다는 생각에 고통을 참고 계속 뛰었다. 다리에 힘이 풀려 앞으로 고꾸라지며 극적으로 시작점에 도착했다. 그러나 파홈은 일어날 수 없었다. 그만 숨이 막혀 심장마비로 죽었기 때문이다
 

톨스토이는 시골농부 파홈의 모습을 통해 만족할 줄 모르는 인간의 끝없는 욕망을 표현했다.
현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도 "나는 파홈처럼 살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나는 얼마나 많은 것을 소유해야 만족할 수 있을까"를 생각해봐야 한다. 필자는 「인간에게 얼마나 많은 땅이 필요한가」를 읽으면서 성경에 기록된 어리석은 부자를 떠올렸다.
 

눅 12:16-20 한 부자가 그 밭에 소출이 풍성하매 심중에 생각하여 가로되 내가 곡식 쌓아 둘 곳이 없으니 어찌할꼬 하고 또 가로되 내가 이렇게 하리라 내 곡간을 헐고 더 크게 짓고 내 모든 곡식과 물건을 거기 쌓아 두리라 또 내가 내 영혼에게 이르되 영혼아 여러 해 쓸 물건을 많이 쌓아 두었으니 평안히 쉬고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자 하리라 하되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예비한 것이 뉘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눈에 보이는 부유한 삶을 위해는 열심히 준비했지만, 영혼을 위해선 아무런 준비도 못한 부자를 하나님께서는 "어리석다"고 하셨다. 애써 육신을 위해 모든 것을 준비했다고 해도 그 생명을 끊어지면 자신에게 아무런 유익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당장 눈 앞의 삶만을 위해서 살 것이 아니라 영원한 영의 세계를 위해 살기를 원하신다. 
 

혹 당신은 지금보다 더 좋은 자동차와 더 좋은 집, 더 좋은 직장 등을 소유하기 위해 숨 가쁘게 달리고 있지는 않은가. 그것이 전부라고 생각하면서 말이다. 하지만 정답은 그것이 전부가 아니다, 이다. 

 
 하나님의교회라는 명칭은 인위적으로 지어진 이름이 아니라 성경에 명시된 초대교회의 이름이 “하나님의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안상홍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교회는 초대교회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는 진리교회입니다. 안상홍님께서는 진리가 없는 시대에 새언약 복음을 회복해 주신 재림그리스도이십니다.

2012년 10월 23일 화요일

엘로힘은 성부,성자,성령 성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주장(하나님의교회/안상홍<안증회>하늘어머니//어머니하나님/


하나님의 교회는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계신 교회입니다사랑의 대명사인 어머니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온전한 가르침과 사랑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세워주신 절기들은 사단의 세력으로 인해 훼파되었습니다. 안상홍님께서 이 모든 절기들을 다시 회복시켜주시어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은 안상홍님의 이러한 복음사역을 중시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 26절의 ‘하나님’은 복수 형태인 ‘엘로힘’ 즉, ‘하나님들’로 기록되었고 '우리의 형상'이라고 하셨다. 이에 대해 대부분의 기독교인은 위의 글처럼 ‘성부,성자,성령 성삼위 일체 하나님’이라고 주장한다. 그러나 성삼위일체라는 것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일체 즉, 한 분이란 뜻이다. 한 분인데 어떻게 ‘하나님들’이라는 복수명사가 되며 ‘우리’라는 말을 쓸 수 있겠는가?
 


만약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 각각 존재하는 세 분이라면 복수 형태의 표현은 맞지만 창세기 말씀은 앞뒤가 맞지 않게 된다. ‘엘로힘’이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이라고 가정하면 창세기 1장 27절은 다음과 같이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아버지와 아들과 (??)을 창조하시고 그러나 창세기 1장 27절은 다음과 같이 기록되었다.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창세기 1장 27절)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사람은 남자와 여자였다. 창조된 사람이 남자와 여자라는 것은 하나님의 형상에는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과 여성적 형상의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이다. 


성경은 남성적 형상의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알려준다.
 마 6: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또한 여성적 형상의 하나님을 어머니라고 알려준다.
 갈 4:26 오직 위에 있는 예루살렘은 자유자니 곧 우리 어머니라
 



그리고 끝날에 아버지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께서 생명수를 주실 것이라고 예언하였다.
 계 22:17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받으라 하시더라
 


‘엘로힘’이라는 복수 명사와 ‘우리’라는 복수 대명사는 아버지와 어머니 하나님의 존재를 증거한다.
 성경은 창세기 1장부터 요한계시록 마지막 장까지 아버지와 어머니 하나님을 증거한 책이다.



 
하나님의교회라는 명칭은 인위적으로 지어진 이름이 아니라 성경에 명시된 초대교회의 이름이 “하나님의교회”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안상홍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교회는 초대교회의 가르침을 그대로 따르는 진리교회입니다. 안상홍님께서는 진리가 없는 시대에 새언약 복음을 회복해 주신 재림그리스도이십니다.

목사 말만 듣고 그대로 행하는 바벨론 신자들(하나님의교회/안상홍<안증회>하늘어머니/어머니하나님//



하나님의 교회아버지(안상홍) 하나님과 어머니 하나님이 계신 교회입니다.사랑의 대명사인 어머니하나님이 계시는 하나님의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의 온전한 가르침과 사랑을 받으시길 바랍니다.


교회 이야기만 나오면 으레 교단교파가 뭔지를 먼저 따져 물어보는 사람들을 가끔씩 만나게 된다. 처음에는 상대의 의도를 잘 모르고 성경말씀을 근거해서 대화를 하다 보면 의견충돌과 대립이 생기기도 한다. 물론 상대가 겸손한 마음과 영적 갈증 때문에 생수의 근원 되시는 예루살렘 어머니와 시온을 찾을 목적으로 진심으로 묻는 사람도 있기는 하다. 그런 사람들은 정말 복을 쌓을 곳이 없을 만큼 천복을 타고 태어난 사람들이고 엄청나게 축복받은 하늘의 천사들이 아닌가? 사도행전에 나오는 자주장사 루디아나 광야에서 빌립을 만났던 이디오피아의 내시 같은 사람들........ 지금도 시온에서는 이런 사람들을 전 세계 곳곳에서 얼마든지 많이 만나볼 수 있다.



그러나 바벨론신도들은 존경하는 우리목사님들(?)한테 이상하게 배운 이단척결 기선제압용 질문과 각종 이단마녀사냥 세미나, 신도쟁탈전 방어용으로 전전 후 수단방법과 물리적 처방전인 감금협박 구타, 가족동원 정신병원강제 입원, 강제개종교육, 이현령 비현령 말씀배척 반칙허용, 거짓말해석과 억지부리기, 툭하면 쉽게 툭터져 나와 침뱉듯 내뱉는 습관성 이단막말부터 열심히 배우기 시작한다.  그중에서도  광명한 천사로 가장한 사탄이 아끼고 사랑하는 고급일꾼으로 분류된 바벨론 목사한테 특별히 한수 배워서 딴지를 걸고 넘어질 때 써먹는 비장의 무기로써 맹독성이 아주 강한 옛뱀의 질문이 바로 은근 슬쩍 던져지는 교단이 뭐예요?라는 질문임을 예전엔 미처 몰랐을 때가 있었음을 솔직하게 고백한다. 이 질문이 왜 그렇게 무서운 독성질문이냐 하면 이미 바벨론이단리스트에 나름대로 해석해서 나름대로 분류해 놓은 나름대로의 이단기준이 있기 때문에 교회 이름만 들어보고 바로 나름대로 이단으로 판정해버리기 때문이다.    

이윽고 현금인출기에서 영수증 계산서가 자동처리되어 나오듯이 결국엔 유명한 우리목사님들의 허락하심과 전 세계 신학자들이 보증하는 이단딱지를 강제적으로 억울하게 발급당하게 되었을 때는 어처구니가 없었다. 아! 차라리 그냥 입다물고 상대하지 말 것을...... 아니야, 그래도 말씀으로 꺾어버렸잖아! 그렇긴 하지만 뭔가 씁쓸한 느낌이 가슴 한구석에 늘 남는 것은 왜일까?



나도 신천지나 여호와의증인, 통일교, 대순진리교를 몹시 싫어하는데 내가 왜 그런 부류와 같은 취급을 당해야 하는지 억울하고 참으로 마음이 답답하고 가슴이 아팠다. 그러나 이젠 한없이 불쌍하고 측은하며 안타깝게만 느껴지는 대상이 바로 그 사람들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왜냐하면 정당한 평가를 거부당한 나의 현실만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이 당할 희망없는 미래를 생각하면 이것쯤이야 문제가 안되기 때문이었다. 아마도 어머니의 희생적 사랑과 배려심이 내 가슴에도 일부분 이식된 것 같아서 날이 갈수록 오히려 감사한 마음만 가득할 뿐이다.


법이 있어서 주차위반 딱지도 무조건 함부로 떼지 못하는 세상에 감히 이단딱지를 나에게 갖다 붙이다니 한때는 야속하고 화나고 답답해서 견디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하늘법도를 어긴 사형수로 죽었던 나를, 그리고 머지않아 또 죽을 운명에 처한 나 하나 살리시려 평생을 희생 고생 다 치르시면서 새 언약을 세우시고 자녀들을 치료하시는 아버지 어머니를 생각하니 죄송한 마음과 감사의 마음에서 눈물이 절로 났다. 이젠 나도 뱀에게 더 이상 물리지 않고 농락당하지 않을 분별력과  뱀의 머리기능을 회복불능상태로 만들어 버릴 솔로몬의 지혜를 깨우쳐 주신 것에 항상 감사드리며 활용코저 애를 쓰고 있다.



뱀같은 질문이 또 날아온다. 그런데  교단이 뭐예요? 옛날엔 곧이곧대로 물으면 묻는 대로 꼬박꼬박 대답하기에 바빴다. 설명이 부족했나 싶어서 더 열심히 가르쳐주기도 하고 때로는 교단 같은 것은 필요 없고 말씀대로만 하면 된다고 가르쳐주기도 했다. 어떤 때는 이거 대답해야 하나 말아야 하나? 그냥  대답할까 말까 망설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은 아무런 고민도 하지않는다. 오히려 기회는 왔다고 생각하고 오히려  여유가 있다고 해야 할까?



열기를 식히고 뜸을 좀 들이다가 그런데 그건 왜 물어요? 이게 바로 내가 터득한 미소와 예의를 갖춘 온유와 겸손의 U-TURN 질문이다. 물론 상대는 나의 질문의 의도를 몰라야 효과만점이지만....... 이때부터 나는 입 하나에 귀가 둘인 이유를 마음껏 감사하면서 경청의 효과를 체험하게 된다. 눈치 빠른 뱀들은 도망치거나 핑계대기 바쁘다. 단언컨대 경청은 대화의 기술에 비해서 예술의 경지라고 느껴질 때가 많다. 문제는 멀쩡한 사람을 정신병원에 강제입원시키는 목사나 "성경대로 가르치면 이단이다"라고 가르치는 목사나 말씀대로 신앙생활을 잘하고 있는 모범성도를 이단취급하는 바벨론신도가 더 심각하고 치명적인 환자임을 경청의 Back Mirror로 비춰주면 결국 상대는 유구무언에 빠지게 된다.   


그리고 난 뒤에는 그쪽이 나의 검진대상이 되고 감별대상이 되며 환자가 되는 것이다. 의사는 환자를 치료하는 것이 주업무이지 환자와 다투는 것이 목적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경청이 얼마나 중요하고 왜 의사의 청진기가 휴대필수품인지를 알게 되었다. 의사의 청진기는 질문을 단축시킨다. 결정적인 순간에 의사의 말 한마디와 표정은 환자에겐 온 천지가 흔들리는 느낌이 든다. 죽을병이 아닌 환자는 의사를 우습게 여길 수 있겠지만 나는 죽었다가 살아났고 지금도 어머니 치료가 끊어지면 죽게 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다. 어머니는 기적을 일으키시는 영적 의원이시요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바벨론 신도들이 아직도 근본도 기본도 원칙도 성경도 하나님도 모르고 목사 말만 듣고 그대로 이것저것 흉내내는 모습이 참으로  안타깝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구원을 위해서 세워주신 절기들은 사단의 세력으로 인해 훼파되었습니다. 안상홍님께서 이 모든 절기들을 다시 회복시켜주시어 구원의 길을 열어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교회 성도들은 안상홍님의 이러한 복음사역을 중시하고 있습니다.